저번에 날짜를 잘못 알아서 못봤었던, 그 배트맨 다크나이트를 봤습니다.
배트맨시리즈는 이것저것 보기는 했지만 그렇게 맘에 드는 작품들이 없어서, 저에게는 그저그런 영웅물 정도로 생각되었죠. 게다가 요샌 워낙 히어로물들이 많이 나와서 그놈이 그놈 같고 딱히 맘에 드는 캐릭터도 없었습니다. 애초에 '히어로'라는 존재 자체가 별로 맘에 안들었어요.
그래서 그게 기대는 안하고 있었습니다만, 생각외로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배트맨을 상대하는 조커에 있는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 약간.
전 배트맨이 안티히어로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네요. 저는 일반적인 히어로에서 완전 벗어난, 그래서 배트맨-경찰-조커or범죄자 의 삼각관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니 (배트맨+경찰)-조커or범죄자 의 구도입니다. 영화에서도 조커가 배트맨에게 '경찰들은 너를 이용할 뿐이고,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릴 것이다'라고 합니다만,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배트맨은 경찰의 숨은 서포터역할에 충실합니다. 경찰은 배트맨이 없으면 거의 아무것도 못하더군요. 그런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버린답니까...;;;;; 그리고 배트맨의 행동들을 보면 너무 정의감이 넘쳐서 히어로서의 의무를 다하는데 온 힘을 쏟더군요. 이러한 상황들을 봤을 때, 배트맨은 '히어로'의 타이틀을 벗을 수가 없네요.
(전 자신의 정의'만'을 위해 행동하는 배트맨을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틀린 것 같습니다)
음.. 이 영화의 핵심은 조커라고 생각합니다.
조커는 너무 매력적이에요. 일반인의 정신적 한계를 뛰어넘어서 만들어진 진정한 미친 놈입니다. 배트맨과 놀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습니다. 그런데도 할 일은 다 하죠. 은행을 털고, 폭탄테러에, 스스로 잡혀들어가기 위한 작전에, 배에 폭탄을 설치하기까지 합니다. 정신병자 치고는 너무 근면해요. 그러면서도 조커는 스스로를 계획성 없는 정신병자라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조커는 정신병자가 아니에요. 그저 이 세상이 너무너무 미워서 어쩔줄 모르겠는데, 어떻게 부숴야 할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고담시의 히어로인 배트맨을 무너뜨리려고 하는거죠. 배트맨을 무너뜨리고, 배트맨에 기대고 있는 경찰을 무너뜨리면, 연쇄적으로 사회의 소요가 발생해서 세상을 부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저 외모가 괴이하고, 행동이 남들과 달라서 사람들은 조커를 정신병자취급하지만, 실제로 조커는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정신병자의 흉내를 내는겁니다. 조커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조커 스스로의 정체성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조커의 행동들을 보면 그의 목적에 대해 대단히 합리적이고, 적합한 행동들이 대부분입니다. 전체의 판을 모두 짜놓은 다음, 자신이 그 안에 들어가서 지휘를 합니다.
그래서 그가 바로 '조커'가 되는 겁니다. 카드게임에서 조커는 단순한 이레귤러가 아닙니다. 조커는 그 게임을 관장하고, 제어하는 조정자이죠. 카드게임에서 자신의 패에 조커가 들어왔다고 해서 그걸 행운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조커를 손에 들은 사람은 그 판을 완전히 승리로 끝낼 수 있는 계획을 세울 수가 있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의 조커는 전체의 판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조커는 배트맨과 경찰들을 쥐고 흔들죠. 마지막에 죠커가 잡힌 것이 그의 실패는 아닙니다. 그는 일부러 시간을 끈 거죠.
조커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합니다. 자신의 입이 찢어진 이유는 사람들에게 말할 때마다 달라집니다. 그리고 배트맨이 레이첼을 구하러 갈때도 거짓말을 하죠. 그의 입에서는 거짓과 사기, 협박 등등 온갖 나쁜 말들만 나옵니다. 그걸 봐서도 조커는 정신병자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왜냐면 정신병자들은 자신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에 대한 구분이 미약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다보면 스스로 자신의 거짓말에 속아버리죠. 조커는 자신의 말을 모두 제어하고 있습니다. 감정에 의해서 내뱉은 말들이라 할지라도 결코 그의 판에 벗어나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음.....
전 이런 캐릭터가 좀 많이 좋습니다. 미친 척하는데 절대로 미친 상태가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 정상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스스로 정상이다라는 걸 알면 안되니까 조커로 분장을 하는겁니다. 그렇게 자신을 가리고, 미친척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머리는 쉴새없이 돌아가서 전체 판을 손에 쥐고 흔듭니다. 게다가 너무 근면해서 자신이 배트맨에게 얻어맞는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목숨같은 건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그는 이 세상이 너무나도 미워서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파멸로 향해가는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서 온몸을 바칩니다. 비뚤어져있어도 너무 비뚤어져있어요.
이런 점이 저에게 있어서 매력적이었습니다.
마지막의 그 검사는 살았으면 했는데 죽어버려서 많이 김이 빠졌습니다. 솔직히 그 검사가 다크나이트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배트맨이 다크나이트라는 건 좀 어불성설인 것 같았습니다. 그의 히어로성을 봤을 때 그는 그냥 나이트입니다. 검사의 죄를 스스로 뒤집어 썼다고 해서 그의 히어로성이 더렵혀지는 건 아닙니다. 만약에 타인이 배트맨을 봤을때 '나쁜 놈'이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그는 그 스스로 '나는 내 정의를 위해서 노력하는데, 타인의 상태까지 신경쓰지는 않는다'라고 말했을 때야말로 배트맨을 '다크나이트'라고 칭할 수 있겠죠.